2022년 실시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당선자 4124명 중 95%가 넘는 3936명이 정당추천후보자였다. 지난 16일 있었던 재·보궐 지방선거에서는 교육감선거를 제외한 모든 당선자가 정당추천후보자였다. 이러한 결과는 정당추천 없이는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희박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공천제도는 지방자치의 이념에도, 정당제도의 본질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주민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그리고 주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이 아니라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정당법」 제2조), 지역적 주체인 주민의 자기 통치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인 지방선거에 개입하여 지방자치를 모욕하고 정당제도를 왜곡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헌법은 정당을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하는데 필요한 조직”으로 설계했고(제8조제2항), 국가적·국민적 차원에서 공통적·일반적으로 처리되어야 할 업무(국가사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과 특정 지방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거나 그 지방공동체와 특유한 관련이 있는 사무(자치사무)를 처리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대립시켜 이들 간의 갈등을 전제하면서도(제111조제1항제4호), 국가기관을 매개한 통일성과 지방자치단체를 매개한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는 정치공동체를 위하여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양자 모두를 대한민국에 결속시킨 후 지방자치단체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국민이 아닌 “주민”을 내세우고 있다(제117조제1항).
따라서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규정한 「공직선거법」제47조를 개정해서, 지방선거에서 정당의 후보자추천을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 정당을 매개해 초래되는 중앙정치(인)에 대한 지방정치(인)의 예속과 국민이익·의사와 주민이익·의사의 무분별한 뒤섞임(특히 지방선거에서 정권을 심판하고 주민의 민원 해결을 위해 국회의원·대통령선거를 활용함으로써, 주민의 지위도 국민의 지위도 모두 훼손하는 자기 파괴적 정치행위)을 줄여서, 지방자치의 이념실현과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바람직한 긴장관계를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행해지는 정당 상호 간 불필요한 경쟁을 덜고 정당이 특정 지방이나 주민의 과도한 요구에서 벗어나 국가와 국민에 집중할 수 있는 현실적 계기를 독려함으로써, 정당의 본질적 기능 강화와 정당정치 발전에도 기여할 것이다.
물론 지방자치 영역에서도 정치적 의사의 효과적인 중개나 지속적 결사체를 통한 지방정치의 책임성 담보 및 의사결정의 효율성 도모와 지방자치단체 소속 기관들에 대한 조직적 감시·통제 또한 중요하며, 유능한 지방정치인의 양성과 토호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 따라서 지방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도를 폐지하는 대신에 정당과는 구별되는 ‘주민의 이익·의사를 위해 주민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주민의 자발적 조직으로서의 정치적 결사(주민자치결사)’가 각각의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안으로 거론해 온 「정당법」 개정(정당설립 요건 완화)을 통한 소위 지방정당의 활성화와 이를 통한 지방정당의 후보자공천제도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지방선거에서 해당 지방에 중심을 둔 지방정당과 전국적 정당 혹은 다른 지방에 중심을 둔 지방정당 상호 간 경쟁에 따른 혼란이나 수도권당·서울당 등과 같은 지방정당이 국회에 진출하거나 국가기관 구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함으로써 특정 지방·주민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사가 왜곡될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주민을 위한 지방정치를 지향하면서도 국민을 위한 정치적 결사체(정당)라는 허울을 갖는 지방정당이 정치적 행위자로 활약하는 것은 국민과 주민을 분별해야 할 우리의 의식을 교란하는 통로를 용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면서 동시에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에 속하는 어느 방면의 땅에 발 딛고 사는 주민이다. 지방자치의 날(10. 29) 기념해야 할 것은, 공과 사를 분별하듯 국민과 주민을 분별한 헌법에 입각한 각성 특히 우리가 보유한 두 지위의 기반인 ‘국민의식’과 ‘주민의식’에 대한 분열적 성찰이어야 하겠다.